호주 워킹홀리데이/3. 워남불 미드필드 공장

호주 생활기 #12 / 2. 워남불 미드필드 meat factory

흙인짐승 2022. 1. 9. 12:47

워남불(Warrnambool) 미드필드 공장 생활 기록 네 번째.

- 인생 최악의 경험 -

 앞선 글들은 전부 미드필드 공장 포지션에 대한 정보였다면,

이번엔 내가 직접 몸소 겪은 포지션 별 경험담을 알려주려 한다.

처음 내가 배정받은 포지션은 가죽 제거인데,

진짜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포지션으로 데려가서

사수에게 인계한 후 사수가 2~3번 시번 보이고 나서 나에게 무작정 둥근 전기톱 주고 가죽 잘라내라고 한다.

방금 죽은 소가 반 잘린 채 갈고리에 걸려서 넘어오면 뒷다리부터 가죽을 톱으로 발라내는데,살코기 도려내면 안 되고 가죽이 중간에 끊기면 더 힘든 작업이 돼서 안 끊기게 발라야 해서생각보다 엄청 정교하고 세밀한 작업이었다.

당황해서 어버버 하면서 몇 번 시도했는데 잘 될 리가 있나 살코기 잘라내고 가죽 중간에 끊기고 난리도 아니었다. 

그래도 첫날이니 하면서 어영부영 넘어갔는데, 3일 차까지 좀 서툴고 어려워하니 사수가 매니저에게 말한 모양이었다.

매니저가 부르더니 너 포지션 바뀌었어하면서 슬라이서 포지션으로 배정받게 된다.

 내가 살면서 제일 힘들었던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슬라이서로 일했던 경험을 얘기한다.

포지션 배정받고 인수인계받는데 사수가 대만인이었는데 첨 보자마자 나보고 칼만 갈으란다.

그래서 뭔 소리지 이랬는데 난중에 일하면서 이해하게 되었다.

디테일하게 설명하자면 소 머리 부분만 갈고리에 걸려 넘어오는데 말 그대로 소 눈부터 다 달려있는 상태로 넘어온다.
소머리가 도착하면 난 소 혓바닥을 잘라내고 볼살을 도려내는 작업 후 머리를 통째로 가는 기계 안으로 넣는 것까지가
내 담당이었는데, 처음 보는 광경에 진짜 징그럽고 피 냄새 때문에 멘털적으로 너무 힘들었다.

소 혓바닥이 그렇게 긴 줄 처음 알게 되었고 소 눈동자도 엄청 커서 처음 봤을 때 놀라우면서 안쓰럽고 그랬다.

방금 잘려서 넘어온 거라 소 혓바닥을 잡으면 근육반응 때문에 종종 내 손을 감았는데, 첨엔 놀라 자빠졌다.

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칼 가는데 정신없는 나를 보게 되었다.

무슨 말인고 하니 고기를 썰려면 한 뼘 정도 되는 가는 칼을 이용하는데, 철로 된 칼갈이 연마봉과 철장갑을 같이 준다.

칼을 갈지 않으면 고기가 안 썰려서 일거리가 밀리게 되어서 쉬는 시간에도 연마봉으로 칼을 갈아야 된다.

철장갑은 내 손을 지켜주는 유일한 보호구인데 안 꼈으면 내 손을 몇 번은 잘라냈을 것 같다.

일거리가 밀리다 보니 난중엔 혓바닥이고 뭐고 그냥 일거리로만 보이게 된다.

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칼 가는 실력과 고기 써는 실력이 늘었고,

여담이지만 이때 경험을 한국 와서 고기 썰일 있을 때 괜히 칼 가는 거 보여주면서 종종 써먹곤 한다.

그렇게 며칠을 일하던 중 다시 한번 포지션 변경을 받게 된다.

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매니저가 오더니 다른 곳 배정되었다 해서 옮겼는데,

그곳이 바로 천국인 소 씻기기 포지션이었다.

진심 여긴 천국이었다. 그냥 가죽 벗겨진 소를 피와 노폐물 제거하는 건데,

고압 호수로 고기 전체적으로 물만 뿌리면 끝이었다.

너무 쉬워서 여기서만 근무하면 1년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.

하지만 변수도 있는 법,

일도 편하고 재밌었지만 매니저의 관섭이 너무 심할 정도로 많은 포지션이다.

나한테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진심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작업한 소 확인 후 계속 잔소리를 했다.

이게 처음엔 이해했는데 며칠을 이렇게 잔소리하고 하니 짜증이 많이 났다.

내가 봤을 땐 꼼꼼히 깔끔하게 했는데 괜히 트집 잡는 것처럼 보였고,난중엔 열 받아서 그러면 안되지만 대충대충 하고 넘긴 적도 있다.그래도 일이 쉬워서 버티면서 일했다.

 

그렇게 또 며칠을 버티면서 일하던 중 매니저의 면담이 갑자기 잡혔는데...

매우 뜻밖의 면담이었다.

이후의 면담과 후기는 다음 글에 남기도록 하겠다.
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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